방학이 무서버라~!

분명 한달여 전까지만 해도 회사도 럴럴하고 일상도 여유로워서

엿같은 가카에 시국 걱정만 아니라면 소소한 저녁 메뉴나 고민하며 나름 살만한 인생 같았었는데...

방학이 시작되고

나보다 머리 하나씩은 더 커버린 덩치 좋은 중딩이 둘씩이나 집에서 뒹굴고 있으니

주간지 리뷰쓰기는 고사하고 뉴스데스크 시청도 주중 행사가 되버리고

분명이 매일 일개미처럼 마트에서 먹을거리를 사 나르건만 냉장고는 늘 부실하고

(그놈의 우유는 꼭 밥 차리기 싫어 아침에 팬케익 부칠려구 하면 똑 떨어지냔 말입니다.)

집에 들어가면 그냥 습관처럼 청소기 손잡이부터 잡고 돌려도 황사철도 아닌 집안이 꼬질하기 이를데 없고

분명히 이틀 걸러 빨래를 돌리건만 가끔 화장실에서 딸 아이가 비명을 지릅니다

"엄마, 수건이 하나도 없잖아~!"

헐, 우리집 타올이 다 가출이라도 한걸까요?        

저녁상 치우고 잠깐 쉰다고 누우면 늘 새벽 1시쯤 남편이 깨웁니다.

"아줌마, 그 앞치마는 잠옷도 아닌데 좀 벗고 자지 그러셔. 앞치마 벗는 김에 심심하면 거울도 한번 보면 좋구"

끙~, 세면대 거울 속에 팬더 아줌마가 서 있습니다. 모냐, 실연당한 삼순이도 아니고.

무려 19시간을 풀 메이크업을 하고 있었다니...이러고도 피부를 논하며 새 화장품을 지른단 말이냐.      
    
화장 지우고 머리를 아침에 감는게 좋을까 지금 감는 게 좋을까 나름 막 머리를 굴리고 시간 계산을 하며

앞치마 두러 부엌에 나와보면 엄마 잠깐 잠든 그새 배고파진 우리집 식신 3마리(명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아욧)

가 저질러 놓은 만행에 앞치마를 벗기는 커녕 고무장갑까지 다시 끼게 됩니다.

아침 출근 준비하러 화장대에 앉으니

화장대 위에 밤에 바르고 자면 수분을 보충해주고 화장을 잘 먹게 해준다는 수분팩이 저를 꼬나 봅니다.

음, 요 근래 들어 화장 못 지우고 잠든 게 몇번이더라.

여름이라고 맘먹고 바른 패티큐어, 고쳐 바를 시간은 없지 자르기는 아깝지

어영부영 길게 자란 발톱이 조금 있으면 호랑이 배도 딸 판입니다.

문득 친정 엄마 생각이 납니다.

딸 셋도 모자라 남편까지 방학을 하는 통에 여름, 겨울이면 늘 시름에 잠기곤 하셨던...ㅋㅋㅋ

저희 엄마 사위 조건 중 하나가 '방학 안하는 직업일 것'이었건만

큰 사위는 아침에 마누라보다 늦게 출근하고 직장도 코 앞이고 게다가 땡퇴근 집돌이

둘째 사위는 지대로 방학 열라 긴 교수 얻으셨습니다. (전 가끔 제 동생 연락 안되면 제부에게 전화합니다)

전 고작 아이 둘 가지고 해메다니...

그렇습니다.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이라고. 직장에서 굴리는 머리 집에서도 굴려야 합니다.

전 A4용지에 한 가득 적어넣고 아이 둘을 불렀습니다.

'딸과 아들, 지금부터 엄마 말 잘 들어라"

우리 딸,아들 저를 멀뚱히 봅니다.

"엄마가 너네 방학하니깐 너어무 힘들다. 엄마도 이젠 늙은 듯 하다"

조금 눈치 봅니다.

"아무래도 이제 두 가지 일은 무리인 듯 싶다"

두 아이 대략 난감 모드

"그래서 엄마가 결심했다. 둘 중 하나만 잘 하기로"

녀석들 얼굴엔 또 시작이다라는 표정이 역력합니다.

"당근, 집에서 너희들을 잘 돌보는 것이 우선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이제 집에서 너희들과 전적으로 시.."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눈치 깐 우리 아이들 이구동성으로 외칩니다.

"엄마 안돼여~"

전 압니다. 짜식들, 엄마 일 좋아하시지 않냐는 둥, 엄마 능력이 아깝다는 둥, 일하는 엄마가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른다는 둥 별별 아첨을 다 하지만 내심 집에서 엄마가 시시콜콜 버티고 서서

잔소리 할 걸 생각하니 오금이 저린겝니다.

물론 아이들 입에서 저희가 엄마를 어떻게 도우면 될까요 라는 말이 나오기까지

그닥 오래 시간이 걸리진 않습니다.

전 얼른 A4용지를 내밀었습니다.

- 아침 상 치우기 500원

- 수진이 화장실 청소 500원

- 하루종일 물컵 씻어놓기 500원

- 거실 스팀 청소기 2회 500원

- 저녁 설겆이 1000원

등등등

"그래.너희들 뜻이 정 그렇다면 방학도 했고 너희도 거드는 의미에서 일을 분담해서 하도록 하자.

그래도 일은 일인데 자식이라고 공짜로 부려먹을 순 없고 종목별로 비용을 책정해 봤다"

우리 두 녀석들 눈에 회심의 미소가 흐르지만

"물론 방학에는 따로 용돈 읍따"

로 응수해 줍니다.

이때부터 두 아이가 서로 신경전을 벌이죠. 서로 어떤 일을 할거냐를 가지고 실갱이를 합니다.

심지어 아침잠 줄여가며 먼저 일어난 놈이 모든 일을 자기가 한다고 동그라미를 쳐놓습니다.

돈이 걸린 문제니까요. 둘 중 누군가 선수를 뺏겨 하루를 공친 날이면 없던 항목까지도 막 생겨납니다.

"엄마, 내일은 내가 세탁기를 돌리면 어떨까요? 500에 해드릴께요. 빨래도 다 개어놓으면 대신 300원만

더 주시면 돼요" 라고 말이죠.

일주일후면 작은 놈이 먼저 공부하던 곳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두주후면 큰 아이도 기숙사로 돌아갑니다.

두 아이 모두 동시에 집에 없어본 적은 처음이라 부부가 다 걱정이 큽니다.

많이 허전할까요 아니면 야호 해방이다 하고 외치며 미용실로 달려갈까요?

아이들 생각에 서로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맨날 싸우게 될까요 아니면 신혼 기분 내며 애정이 돈독해질까요.

나라 꼴은 점점 목불인견이고 이젠 화내기도 아까워서 투표일만 기다리지만

저러다 또 애먼 생죽음이라도 날까 싶어 뉴스에서 쌍용차 현장만 나오면 똑바로 보기가 겁이 납니다.

사교육 열풍이 뜨겁다는 동네에서도 학교 시험 감독 가보면 한반에 서너명이 이름 석자 덜렁 쓰고

바로 엎어집니다. 그 아이들 이제 고작 중2인데 말입니다.

출세하고 성공하라고 보낸 유학이 아니고 너 하고 싶은 거, 잘하는 거 기죽지 말고 찾아서 마음껏

펼쳐보라고 보낸 유학이지만 조기 유학 보내는 게 자랑일 순 없습니다. 너무 비겁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나도 다니기 싫은 학교, 아이들한테 강요하기 싫었습니다.

전교 1등을 하는 아이도 가고 공부를 남보다 못하는 아이도 갑니다.

잘하라고 채근하게 되고 방학이면 학원 전단지 열심히 모으고 이리저리 귀를 쫑긋거리며

공정택을 혐오하는 스스로에게 너무 지칩니다. 그 짜증이 아이들에게 가기도 하니까요.

며칠 안 남았습니다.

남편에게는 키워놓고 나니 부려먹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농을 하지만

올 여름은 오락가락 하는 날씨만큼이나 참 어수선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아이들에 친정 아버지 병구환에, 몇가지 집안 중대사에 회사일까지...

잠시 짬내 게시판에 들려보는 것도 요즘 같으면 저한테 참 호강입니다.

by 담비부인 | 2009/07/31 13:38 | Thinking | 트랙백 | 덧글(0)

2009.7.1

아버지는 아직도 많이 힘들어 하시지만 일단 퇴원, 혜영집으로 돌아오심

지훈은 방콕으로 이동, 장경숙 선생님댁에서 썸머스쿨을 시작함

용인고속도로가 개통되고 아파트 계약을 위해 펀드 해지

좀 시원한 집으로 이사갈까 싶어 삼성동과 청담동의 빌라를 생각 중

오랜만에 집에서 식구들에게 저녁을 해줌 - 줄기콩과 미니 아스파라거스 볶음, 등심 샐러드, 차돌박이 된장찌게

날은 많이 덥고

밀린 책, 밀린 음악, 밀린 글이 책상에 수북~~~!!!   

by 담비부인 | 2009/07/01 10:49 | 트랙백 | 덧글(0)

2009년의 여름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며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그대 손바닥 안에 무한을 쥐고
한 순간 속에서 영원을 보라


by 담비부인 | 2009/07/01 10:36 | 다이어리 | 트랙백 | 덧글(0)

동생 유시민을 말한다 - 유시춘

동생 유시민을 말한다
 

386의 누나로서 말하노니 “익숙한 것은 곧 감옥이다”

 

유시춘 / 작가

       

         

4월은 잔인한 달인가.

 

전후의 초토를 ‘황무지’에 비유한 모더니스트 T.S Eliot의, 이제는 고전이 되어버린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우’는 4월은 정녕 잔인하다.

 

‘인생은 빈 술잔, 주단을 깔지 않는 층계. 사월은 천치와도 같이 중얼거리며 온다’는 영국 여성 시인의 사월송이 다가든다.

 

봄의 ‘신생’을 찬탄하는 노래보다 새로운 시작에 대한 두려움과 절망을 읊은 그것이 더 많은 까닭은 무엇일까. 유명한 '春來不似春'도 그러하다.

 

이미 많은 독자께서 알고 계시다시피 필자는 유시민의 누나이다.

 

78년도 대학에 입학하면서 집을 떠난 이후 줄곧 유시민은 나와 같이 살거나 내 근처에서 살았다. 92년 독일 유학을 떠나면서 그들 세 식구는 일산사는 나에게 주민등록을 올려놓았다. 그것이 2003년 고양시 국회의원 재선거 출마의 계기가 되었다.

 

무명의 운동권 학생이 제도권에 데뷔한 단초가 되었을 ‘항소이유서’의 기억을 더듬으면 유시민과 나는 혈육으로는 오누이의 사이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진한 동지애가 있었지 싶다.

 

85년 5월, 항소심 법정에서 만난 이돈명 변호사께서 내게 지나가는 말씀으로 ‘시민이 항소이유서 읽어봤소?’ 하시기에 이튿날 사무실로 가서 어눌하게 그걸 좀 보고싶다고 말씀드렸다. 줄 그어진 구식 편지지 30여장에 쓴 꽤 두툼한 분량이었다.

 

혼자서 다 읽어보니 명색 작가인 나로서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글이었다. 26세의 청년이 영어된 처지에서 참고문헌 한 줄 없이 써내려간 글이라기엔 믿기지 않게 정돈된 구성의 미문이었다.

 

곰곰 생각하다가 나는 친지 몇 사람이라도 함께 읽어봐야겠다 싶어서 그걸 들고 을지로 3가로 갔다. 골목에 촘촘히 박혀있는 청타인쇄소 한 곳으로 들어가 현장에서 급행으로 빼준다는 조건으로 급행료를 얹어주고 500부를 인쇄했다. 당시는 그것도 엮기에 따라서는 범죄로 구성될 법 했기에 나는 줄행랑을 치며 골목을 빠져나오며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느라 그만 그 원본을 인쇄소에 두고 나왔다.

 

민추협 사무실, 법원 기자실, 서울대 총학생회 등 몇 곳에 갖다놓은 ‘항소이유서’는 그렇게 전국으로 삽시에 퍼졌다. 놀라지 마시라. 다음달 어느 아침에 눈을 떴더니 월간조선 광고문안에 그 항소이유서가 버젓이 떠있는 게 아닌가. 물론 군데군데 삭제한 글이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조선‘은 그래도 민주화를 상품으로 팔아먹을 정도의 이성은 있었던 때였다.

 

그 직후에 나는 민가협의 모태가 된 ‘구속학생학부모협의회’ 결성을 주도하고, 사회 보고, 여러 대학교를 출몰하면서 대학생들을 선동한 죄로 재직하고 있던 고등학교에서 강제 해직을 당했다. 하기는 치안본부, 안기부 등에서 현직 교사인 나를 그때까지 두고 본 것이 오히려 자비로운 일이었다.

 

유시민으로 인해 가슴이 베어지는 아픔이 많이 있었다.

 

80년 5월 18일 새벽, 계엄군이 서울대를 덮친 시각 이후 온갖 흉흉한 소문이 꼬리를 물었다. 누군가는 권총을 이마에 들이댄 군인에 의해 유시민이 끌려갔다고 했고 혹자는 이미 죽었다고도 했다. 생사를 모르고 지낸 그해 5월의 보름간은 정말 하늘과 땅이 맞붙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84년 복학 이후, 폭력과격 학생의 대명사처럼 되어 관제언론에 의해 난도질당할 때가 그랬다. 그렇게 온유한 성격의 천래적 페미니스트가 마치 악당처럼 매도당하는 데도 속수무책인 것이 서럽고 슬펐다.

 

하루 걸리는 먼 길인 마산교도소로 면회 가서 ‘금치’라는 교도소 측의 말만 듣고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채 돌아서 나오던 날의 그 아득한 절망과 슬픔을 어찌 표현하겠는가.

 

이것이 또한 어찌 우리 오누이만의 설움이겠는가. 당시 군사정권에 저항한 숱한 양심들이 함께 겪은 고난의 행군이다. 그래도 말과 글을 다루는 우리 오누이는 행복하다.

 

우리 ‘민주화운동지혈사’는 그야말로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묵묵하게 헌신한 이들의 선혈과, 꽂도 십자가도 없는 무명용사들의 희생으로 온전히 쓰여져야 한다.

 

목련이 처음으로 기린처럼 담위로 봉오리를 쏘옥 내민 사월 아침에 나는 가슴이 몹시 시리고 아프다.

 

우리당 전대가 끝났건만 그 후폭풍은 아직도 인터넷 바다를 떠나지 않는다.

 

유시민을 조직적으로 비난한 386 의원들의 행태를 두고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어 선거기간 중에 입은 상처가 덧나지 않을까 사뭇 염려스럽다. 이번 유시민 때리기에 가담했던 386 의원들을 생각하면 진정 마음이 쓰리고 저민다. 80년대 몇년 동안 나는 유시민의 누나이기도 했지만 그들의 누나였다.

 

그들을 지원하기 위해 민가협 총무로서 수없이 캠퍼스의 담장을 몰래 월장했고 수배자들을 밀회하면서 연락책 노릇을 했으며 많은 날들을 교도소 정문을 마주하고 맨 바닥에 주저앉아 바람 실린 마른 빵을 뜯어먹었다.

 

그들의 정당성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수만장의 유인물을 쓰고 제작하고 뿌렸다. 그들은 내 사랑이었고, 나아가 정녕코 우리 사회의 ‘희망의 거처’였다. 그들이 추구하는 대의는 의심 없이 불의한 권력에 항거하는 ‘정의’였으며, 그들의 갇힌 ‘부자유’는 우리들의 진정한 ‘자유’를 위한 볼모였다. 만인을 위해 투쟁하는 그들의 부자유는 나의 자유의 값을 반추하게 했다.

 

‘만인의 자유를 위해 투쟁할 때 나는 자유’ 임을 그들은 부자유함으로 증명했다. 단언컨대 우리의 민주주의와 역사는 이들 젊은 사자들에게 빚진 바 크다.

 

이제 그들의 대표성을 지니고 함께 민주주의의 완성으로 가는 길목에 들어선 이들이 과거에 군사독재가 애용하던 말을 살짝 바꾸어 그들의 선배에게 날렸다고 한다.

 

무엇 때문인가. 논객들의 지적과 분석이 있었으니 생략하기로 하자. 나의 아우를 향해 날린 독화살이 무척 가슴 아프지만 나는 아직도 386 의원들을 향한 내 사랑과 믿음을 쉬이 내려놓을 수 없다.

 

그들에게 내 진정을 전하고자 한다.

 

그대들은 87년 5월 23일 오후 2시를 기억할 것이다. 민통련이 광주항쟁 7주년을 기해 민주영령추모주간을 선포하고 그 집회를 종로 3가 탑골공원에서 개최하려던 시각이었다. 종로 3가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행인들로 붐볐다.

 

2시 정각. 행인들 사이에서 호각이 울렸고 인파에 섞여 있던 학생들이 순식간에 도로 위로 쏟아졌다. 도로 위에서 구호소리가 퍼졌다. ‘종철이를 살려내라’. ‘호헌철폐 독재타도’.

 

삼천여명이 도로를 점령함과 동시에 함성은 더욱 우렁차게 이어졌다. 로마병정 차림의 전경들이 막아서면서 학생들을 연행하기 시작했다. 가장자리와 앞줄부터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광주출정가’가 터져나오면서 학생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옆사람과 팔깍지를 굳게 끼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서로 사슬처럼 팔을 굳세게 낀 채 도로 위에 드러누워서 연행에 저항했다.

 

86년 11월에 건대사건으로 운동의 주력부대 1,200여명이 모두 구속되는 대탄압이 있었던 터라 연행이 곧 구속을 의미했으므로 그들은 필사적이었다. 인간사슬을 끊어내려는 전경들이 방패로 학생들의 몸을 내려찍기 시작할 때였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시민들이 나섰다. 시민들은 전경을 제지하며 외쳤다. 학생들이 돌을 들었느냐. 화염병을 던졌느냐. 얘들은 맨 주먹인데 왜 먼저 때리느냐. 전경들이 주춤거리는 사이에 연행되려던 학생들은 더욱 팔을 단단히 조였다.

 

오, 그 때 잿빛 허공으로부터 굵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학생들은 모두 비에 젖었다. 학생들을 빨갱이로 오인해 신고하던 시민들이 온전히 자기 편이 되어 지켜주는 감격 앞에서 그들은 울었다. 눈물은 흐르자 마자 빗물과 범벅이 되었다. 한번 흠뻑 젖은 육신들은 이후로 내내 그렇게 사슬을 만든 채 광주영령을 추모했다.

 

끝내 연행된 1,200여명은 그날 자정 이전에 모두 훈방되었다. 경찰은 화염병도 짱돌도 지니지 않았던 그들을 처리할 법률을 찾지 못했던 것이다. 이 날의 투쟁은 학생운동의 오래된 ‘화두’인 ‘대중노선’을 확인한 마침표였다. 전두환 정권 내내 학생들은 선도투쟁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다.

 

고립무원의 싸움에는 언제나 선혈이 뚝뚝 흘렀다.

 

그러다가 5.3 인천사태와 ‘애학투’의 건대항쟁이 무참히 유린당하는 것을 기화로 ‘대중노선’을 절박하게 고민한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독재타도를 위한 동력임을 5월 23일의 가두투쟁은 돈오돈수케 한 것이었다.

 

며칠 후 5월 27일. 마침내 반독재연합체인 ‘국민운동본부’가 창립되고 단일대오로 뭉친 전대협은 전두환과의 일전에 불퇴전의 결의를 다지게 된다.

 

물고기가 물에서 놀 듯이 민주화운동은 국민의 지지와 신뢰만이 절대적 환경임을 터득했다.

 

그날 5월 23일 가두투쟁의 현장과 이후 6월항쟁을 내리달렸을 386 의원들은 아마도 이번에 유시민을 향해 돌아보지 아니하고 철없이 내뱉는 ‘한 사람의 열 걸음’을 질타한 것으로 나는 이해한다. 실제로 그들 중에는 ‘열 사람의 한 걸음’을 주문하기도 했다.

 

나는 집단 공격당한 유시민의 누나로서가 아니라 아직도 내 사랑인 386 의원들의 누나로서 말한다.

 

역사의 장강은 부단히 뒷 물결이 앞 물결을 치고 흐르며 앞으로 나아간다. 독재시대의 선도투쟁과 대중노선은 이제 흘러간 지난 역사가 되었다.
 

노무현의 사람들과 참여정부의 작은 티끌까지 찾아내어 물어뜯고 있는 거대언론, 그 하이에나의 무한자유를 보라. 언론자유에 관한 한 87년 그 때와 지금은 석기시대와 산업사회의 거리만큼 아득하다.

 

그런데 그대들의 레토릭은 여전히 전대협 의장 시절, 고난보다 영광이 더욱 빛나던 시절에 묶여있지나 않은지.

 

그리고 경계하고 또 경계하라. 비단옷은 자칫 영혼을 녹슬게 한다는 선인의 경구를 새기라.

 

80년대 한때 청년정신의 정화를 남김없이 분출했던 김민석이 어떻게 권력과 유착하면서 허물어졌던지를.
  
김민석은 서울시장 출마를 앞두고 어느 언론사와의 긴 인터뷰에서 가장 친하게 지내는 의원으로 ‘정균환’을 자랑했다. 그는 그때 정균환 등과 밀실에서 늘 어울렸으며 민주당 쇄신을 요구하는 정동영을 공격했다.

 

정균환은 그런 김민석의 발언을 참 생뚱맞게끔 링컨의 유명한 ‘게티스버그 연설’에 비유했다.

 

허무하고 또 허무하지 않느냐.

 

권력은 그렇게 ‘눈 위에 새긴 발자국’과 같은 것이다. 386 그대들이 추구한 꿈은 권력이 아니라 ‘민족의 자주, 사회의 민주화’였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성취된 지금은 민주주의의 컨텐츠를 새롭게 구축하는 과제가 절대절명으로 놓여있다. 지금은 ‘한 사람의 열 걸음’도, ‘열 사람의 한 걸음’도 아닌, 바로 ‘열 사람의 열 걸음’이 요구되는 때이다.

 

소주 한 잔 하면서 형님 아우하며 인맥과 온정으로 권커니 잣커니 하는 짓은 가당치 않은 짓이다. 그런 적당주의 보신주의는 386의 코드가 아니다.

 

80년대 그때처럼 진정과 열의로 이 시대가 요구하는 과제가 무엇이며 386이라는 가치지향적 개념이 그대들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자문한다면 명석한 그대들은 얼마든지 답을 찾을 수 있다.

 

혹여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이미 그대들에게 익숙해진 것이 있다면 그것과 결별하라.

 

익숙한 것, 그것은 우리에게 또 하나의 감옥이다.

 

 

 

 

편집자註

열린우리당 당의장과 상임중앙위원을 선출하기 위해 열렸던 2005년 4.2 전당대회. 유시민 후보는 선거기간 내내 당 내 인사들로부터 엄청난 비토와 공격에 시달렸고 결국 4위의 성적으로 상임중앙위원에 당선됩니다. 전당대회가 끝난 직후인 2005년 4월 9일, 유시춘님이 데일리서프라이즈에 기고한 글입니다.

by 담비부인 | 2009/06/25 11:21 | 서재1 - 글모음 | 트랙백 | 덧글(0)

Pic out! - 6월 마지막주 시사IN

화요일인 어제,
꼴랑 월요일 하루 일하고 벌써 우울한 저를 
솔약국집에 도착할 때까지 버티게 해줄 친구들이 도착했습니다. 
세권의 잡지를 책상에 늘어놓고 므흣한 마음으로 누구부터?를 고민하는 순간이 젤 좋죠.
보통때라면 서두를 것 없이 표지를 보며 느긋하게 간을 보곤 합니다만...
이번 주는 고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시사IN(사실 늘 좀 밀리는)부터 집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표지가 '고양이'였습니다. 

지금같은 난세에 까칠하고 묵직한 정통 시사 주간지가 표지에 고양이를?
헤드 타이틀을 볼까요?    [길고양이와 함께 춤을...]
아니, 집고양이도 아니고 길고양이? 
그 야생이 살아 숨 쉰다는,  
인간의 도움은 커녕 어지간한 인간쯤은 마주쳐도 눈빛 포스하나로 기냥 눌러 버린다는,
21세기 서울 한복판, 특히 청계천을 중심으로 출몰하는 쥐들이 가장 두려워한다는
바로 그 길고양이가 아니신가 말입니다.
          
여러분, 뭔가 삘이 팍 오지 않으십니까?               
아, 드디어 시사IN기자분들이 제가 가장 선물해 드리고 싶었던
'난세를 이겨내는 풍자와 여유'를 갖추게 되신 게 분명합니다.
얼마나 촌철살인의 위트가 있을 것이며 얼마나 큰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실까요.
표지만 봐도 가슴이 벅차오는데...

낚였습니다.TT     

시사IN이 잘못한 게 아니라면 제가 '외상후스트레스성장애' 환자인게죠.휴우    

심술이 나서 편집국장의 편지는 패스~ (남기자님, 편지 진짜 잼 없쓰요)

1.
'나는 다른 제3자가 내 메일을 읽어도 좋다고 허락한 적이 없다' - [검찰, 여론 재판에 목숨 걸었다]중 PD수첩 김은희 작가

저를 포함해 이 글 읽으시는 회원분들중에 '내 글 다 읽으면 바로 구속이다'라고 걱정하실 분들이 30% 넘는다에 한표 던집니다. 음~ 남편만 안 보면 된다고 하시는 분들이 50% 넘는다에도 두표 던집니다.

2.
'MB가 디지털 시대 정보화 세대에게 땡볕에 나가 삽질이나 하라고 말하는 것과, 유인촌 문화부 장관이 예술가에게 기능에나 전념하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 동일한 현상' - [특집1.위기의 유인촌 장관 - 진중권씨 인터뷰 중]

평소 일사불란한 단체행동과는 거리가 먼 '현장문화예술인들'까지 발끈해서 벌이고 있는 '유인촌 퇴진운동'의 내용과 향후 전개방식을 취재, 보도한 기사입니다.지난 번 작가선언에서도 보셨듯이 저항의 방식이 참신합니다.지극히 반문화적인 권력에 대해 고도의 창의성으로 상대하는 예술인들이 대한민국 품격을 이나마라도 유지해주고 있다는 건 양촌리 김회장도 안다는 거~.

3.
'대중이 더 이상 박정희 신화는 가능하지 않다는 현실을 깨닫는 순간, 아버지 시대의 유산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는 박 의원에게는 이명박대통령이 처한 고도성장 없는 시대에 대한 답을 내놔야..." -[이명박이 무너뜨린 '박정희'신화 중]

박정희대통령에 대해 우리국민이 가지는 '양가감정'은 10년간의 민주화 시대를 거치면서 '복고풍 향수'로 되살아나 따님조차 재끼고 그 유산을 독차지한 지금의 가카를 탄생시킵니다.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답이 안나오는 가카 이후, '반이명박 반사이익'을 누가 차지할까요? 기자는 '다음 대선은 죽은 자들의 대결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을 소개하며 미래가 부재한 상태에서 현실은 복고주의로 흐를 수 있음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우리모두 가카에 쏟는 관심 중 일부를 '노무현 + 알파'만들기에 돌려보면 어떨까요?

4.
'시민이 민주주의에 대한 존경심을 거두고 있거나 중산층이 도리어 반민주 세력이 되거나'- [특집2.요동치는 아시아] 중 아시아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는 원인을 말하며

우리의 가카께서는 앞치마까지 두르고 몸소 고기구워 맥여가며 친목을 도모하시기 여념이 없지만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시아를 미국보다 훨씬 더 낯설게 여기는 듯 합니다. 가택연금을 코 앞애 둔 수치여사를 수감한 버마, 취임 1주년을 맞은 총통의 취임 축하일에 축하가 아닌 반대 시위하느라 수십만명의 인파가 거리로 쏟아져 나온 타이완을 비롯 20세기 후반 들어 간신히 권위주의독재를 무너뜨린 필리핀,인도네시아,타이 그리고 한국이 약속이라도 하듯 민주주의의 퇴행과 권위주의의 부활에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우리 모두 범아시아 연대의식을 가지는 차원에서 관심을 가지고 봐야 할 듯 합니다.
참, 말레이시아에서는 대표적인 야당지도자가 '동성애자'라는 누명으로, 차세대 야당 리더는 남자친구가 보궐선거 직전 공개한 나체사진으로 정치적 매장을 당했다네요.야당을 탄압하기 위해 음모와 협박이 난무하는데 특히 효과가 큰 건'망신주기식 기획 수사'라고 합니다.이쯤되면 다들 모여서 '제발 고기만 구워먹다 헤어지시라'고 해야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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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모든 도시 공간을 점유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폭력적으로 내쫒고,베어버리고,부숴버리고...이런 심성이 용산 철거민 사건처럼,결국 인간에게도 향하는 것 아닐까요?' - [커버스토리-골목길 헤매는 나비와 함께 춤을...]중 길고양이를 그리는 일러스트 박은경 작가의 말

이번 주 표지 모델이신 길고양이들의 삶과 애환, 길고양이를 위한 활동가들의 이야기와 함께 고양이와 좀 더 우호적인 관계를 가질 수 있는 구체적인 요령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강아지를 기르고 있는 저는 고양이를 아주 매력적인 동물이라고 생각합니다.    

PS.미련을 못 버리고 혹시 삽화 어디 구석에 뭔가 표식이라도 발견할까 싶었지만...혹, 다음주에?

그밖에
주부들이 관심을 가지고 '태도를 결정'해야 할 '대형마트의 24시간 영업' '기업형 슈퍼(SSM)'문제를 다룬 기사 [성난 민심,홈플러스를 때리다]에서는 충북 시민,사회단체는 물론 간만에 '관'과'정'까지 뜻을 함께한 '홈플러스 불매운동'부터 6월17일 입법예고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의 문제점을 짚어줍니다. 자동차도 만들고 아파트도 만들고 극장 체인도 하고 신용카드도 하시고 심지어 활주로 보고 비키라고 하고 어마어마하게 높은 빌딩도 짓는 스케일 대빵 큰 '우리동네 슈퍼마켓' 예비 창업자이신 대형 유통업체가 일련의 반대 움직임에 대해 '헌법상 영업의 자유'를 주장하며 억울해 한다고 합니다.

[왕따당한 '영혼의 노숙자'들]은 40대 남성이자 가장인 우리들 남편들 이야기이구요
 
[서평]에서는 최근 4대강 못지않게 심각한 파괴를 당하고 있는 '모국어의 생태계'를 희망하며 '거위,맞다와 무답이'를 추천합니다.

늘 딴지보다 품위있고 시사인보다 재미있게 칼럼을 쓰시는 최내현 장르 전문지 판타스틱 발행인은 [까칠거칠]에서 정치가 적성에 안맞는 우리 가카가 마치 '강아지를 싫어하는 수의사'처럼 불행할거라며 그런 가카가 대통령직을 수행해야하는 심정이 마치 '보신탕 집을 오픈하는 브리짓바르도' 에 버금갈 거라는 위로와 함께 보통은 그럴 때 적성을 바꾸거나 다른 직장을 알아보는데, 적성을 바꾸기는 좀 어렵고 그러다 보면 가끔은 짤리기도 한다고 충고를 보내셨습니다.
 
덧붙여) 이거 스포일러가 아닙니다.시사IN 중 정말 재미 없는 부분만 뽑은 거랍니다. 가끔이라도 사서 일독하시면 원래 많으신 교양이 날개를 달게 될거구요, 그 교양에 지성까지 더해져서 주변을 밝히게 될 겁니다.(라고 제가 존경하는 어느 교수님이 저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by 담비부인 | 2009/06/24 15:15 | 서재3 - 리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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